가족 · 노동 등 사회관계에 관한 결정
99헌마516
고엽제후유의증환자지원등에관한법률 제8조제1항제1호
별칭 : 고엽제환자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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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집 13-1, 1393
가. 사건의 배경
월남전 당시 미군에 의하여 군사작전 지역에 다량 살포된 고엽제가 폐암 등 심각한 후유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월남전 이후 상당한 기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역학적으로 증명되었다. 국회는 1993. 3. 10. 월남전에 참전한 사람들 가운데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나 그 후유증으로 사망한 사람의 유족 등에게 적정한 보상을 제공하는 내용의 고엽제후유의증환자지원등에관한법률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위 법률은 고엽제후유증으로 사망한 사람의 유족으로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범위를 ①법 시행 전에 사망한 자 중 고엽제로 인한 질병에 의하여 사망하였음이 인정되는 자의 유족 ②국가보훈처장에게 고엽제환자로 등록신청을 한 후 법적용대상자인지 여부가 결정되기 전에 사망한 자 중 고엽제로 인한 질병에 의하여 사망하였음이 인정되는 자의 유족으로 한정하였다. 따라서, 청구인과 같이, 법 시행 후 미처 고엽제후유증환자로 등록신청하기 전에 사망한 사람의 유족은, 설령 사망한 사람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사망하였음을 입증하더라도 위 법률에 의한 보상을 받을 수가 없게 된다. 이에 청구인들은 위 법률의 관련규정이 자신의 평등권과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나. 결정의 주요내용
(1) 다수의견의 요지
헌법재판소는 9인의 재판관 중 6인의 다수의견으로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 것으로 결정하였는바, 그 이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가) 재산권 침해 여부
헌법 제32조 제6항은 '국가유공자·상이군경 및 전몰군경의 유가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우선적으로 근로의 기회를 부여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근로의 기회 제공'은 국가유공자 등에 대한 보훈의 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예시한 것일 뿐이고, 전체로서의 이 규정이 가지는 의미는 국가가 국가유공자 등을 예우할 포괄적인 의무를 지고 있음을 선언하는 데 있다. 다만, 구체적인 보훈의 내용은 입법자가 국가의 경제수준, 재정능력, 국민감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해야 하는 입법정책의 문제이고, 국가유공자가 받게 될 보훈은 법률에 규정됨으로써 비로소 구체적인 법적 권리로 형성된다. 이 법에 의한 고엽제후유증환자 및 그 유족의 보상수급권도 바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위와 같이 보상수급권은 법률에 의하여 비로소 인정되는 권리로서 재산권적 성질을 갖는 것이긴 하지만 그 발생에 필요한 요건이 법정되어 있는 이상 이러한 요건을 갖추기 전에는 헌법이 보장하는 재산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법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청구인들은 현재로서는 보상수급권이라는 재산권을 취득하지 못 하였고,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이 청구인들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는 할 수 없다.
(나) 평등원칙 위반 여부
고엽제 후유증 환자의 사망시기가 이 법 시행 전인가 아니면 후인가 하는 문제는 고엽제 후유증의 종류나 그 이환의 시기 및 정도 또는 질병의 진행속도의 차이라는 우연한 사정에 기인한 결과일 뿐이고, 고엽제 후유증이라는 질병으로 고통을 받은 점에서는 양자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그러므로 사망시기가 이 법률 시행 전인가 혹은 후인가의 차이를 이유로 유족의 등록신청자격에 차별을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이 법 시행 후 등록신청을 하였으나 고엽제 후유증 환자인지 여부의 판정이 나기 전에 사망한 자들 가운데에는, 국가측의 사정으로 판정이 지연됨으로써 사망 전에 고엽제 후유증환자로 결정될 수 없었던 사람들도 있는 반면, 애초에 등록신청조차 하지 않은 채 사망한 사람의 경우에는 국가에게 판정지연의 책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양자 사이에 차별을 두는 이유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망이 임박한 시점에서 비로소 등록신청을 하였다가 곧바로 사망에 이른 고엽제 후유증 환자의 경우에는 국가의 판정 지체에 따른 특별한 배려를 할 필요가 없는 반면에, 등록신청을 하지 않고 사망한 환자 가운데에는 의사의 오진 등 여러 가지 사유로 자신이 앓고 있는 질병이 고엽제 후유증이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 했던 사람들이나 질병의 급속한 진행으로 말미암아 사망 전에 미처 등록신청을 하기 어려웠던 사람들 또는 자신이 앓고 있는 질병이 고엽제 후유증이라는 사실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그에 대한 보상제도의 존재나 보상을 위한 절차 등을 미처 알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는 것이므로 등록신청을 하지 않고 사망한 사람들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절차해태의 책임을 묻는 것도 불합리하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고엽제 후유증 환자 및 그 유족에 대한 국가의 보상은 이들에 대한 국가의 단순한 은혜적 시혜가 아니라 그들이 월남전에 참전하여 국가를 위하여 바친 고귀한 희생에 대한 정당한 보상의 일환이라고 보아야 하므로, 국가로서는 사정이 허락하는 한 고엽제후유증으로 판명된 환자 및 그 유족에 대하여 빠짐없이 지속적으로 최대한의 보상을 하는 것이 헌법 제32조 제6항의 정신에 부합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고엽제후유증환자의 유족에 대한 보상을 행함에 있어서는 환자 본인의 사망원인이 된 질병이 월남전의 참전중에 고엽제 살포에 노출되어 이환된 질병인지 여부를 가리는 것이 가장 본질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지 환자가 죽기 전에 등록신청을 하였는지 여부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물론 환자 본인이 죽기 전에 등록신청을 한 경우라면 환자를 직접 검진할 기회가 있어서 고엽제 후유증인지 여부를 보다 정확하고 쉽게 판정할 수 있었지만 그런 신청 없이 죽은 경우에는 환자 본인에 대한 직접 검진의 기회가 없어 판정이 보다 어렵고 부정확해질 위험이 있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위 법률에 의하면 이 법 시행 전에 사망한 자 및 이 법 시행 후에 등록신청만을 하고 사망한 자 등에 대한 고엽제 후유증 여부에 대한 판정은 사망진단서나 진료기록 등의 서면에 의하여 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판정의 어려움이나 부정확의 위험은 이 법 시행 후 등록신청 없이 죽은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이 법 시행 후 고엽제 후유증으로 사망한 자의 유족에 대하여 환자가 생전에 등록신청을 한 여부를 기준으로 하여 유족의 등록신청자격 유무를 결정하는 이 사건 법률조항은 이 법 시행 후 등록신청 없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사망한 자의 유족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자의적으로 구별하여 차별하는 위헌적인 법률이라고 할 것이다.
(2) 반대의견의 요지
국가보훈적인 예우의 방법과 내용 등은 입법자가 국가의 경제수준, 재정능력, 국민감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구체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입법정책의 문제로서 폭넓은 입법재량의 영역에 속한다.
이 사건 법률조항이 고엽제후유증환자가 생전에 등록신청을 하여 일정한 절차를 밟고 있는 중에 사망한 경우에만 그 유족에게 유족등록신청의 자격을 부여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본인의 생존시에 분명히 법적·제도적 장치가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권리행사를 해태한 경우에는 국가가 그 보호를 거부할 수 있다. 둘째,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보훈병원 및 병원보유장비, 보유의사의 수 등의 한계로 국가의 검증절차상 많은 시일이 걸리므로 고엽제후유증환자로 최종결정되기 전에 사망한 경우에는 이를 배려할 필요가 있다. 셋째, 등록신청을 하도록 하지 아니하면 고엽제후유증환자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이를 파악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고, 따라서 국가예산을 수립함에 있어서 보훈 목적의 예산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 수 없어 결국 국가재정형편을 감안하여 결정되는 보상수준 자체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생기게 된다. 넷째, 만일 생전에 등록신청을 하였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고엽제후유증환자의 유족의 등록신청을 모두 허용하는 경우 고엽제법에서 정하고 있는 보훈병원이나 그 위탁을 받은 전문의료기관장 이외의 의료기관의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고엽제후유증이 그 발생시기와 진행속도가 환자와 질병의 종류에 따라 다르고 장기간에 걸쳐 완만하게 나타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진단의 정확성·신뢰성과 대상자 판정검진체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다섯째, 생전에 고엽제후유증환자로 결정·등록된 자 중에서도 신체검사결과 1-7등급의 판정을 받지 못하고 등외판정을 받은 후 사망한 경우 그 유족에 대한 등록이 배제되고 있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청구인들과 같은 경우를 모두 유족으로 신청받아 보상 여부를 결정할 경우 오히려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이유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고엽제후유증환자가 생전에 등록신청을 하였는지 여부를 유족의 보상수급권의 발생요건 중의 하나로 설정한 것은 그 나름대로 합리성을 갖추고 있다고 할 것이고 객관적으로 정의와 형평에 반한다거나 자의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으므로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생각한다.
다. 사후경과
헌법재판소는 단순위헌 결정을 하는 대신 헌법불합치 결정을 함과 동시에 이 사건 법률조항의 개정 시까지 이를 계속 적용할 것을 명하였다. 그리고 위와 같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2002. 1. 26. 이 법률조항이 개정되었다. 개정법에 의하면, 월남전에 참전하고 전역된 자 등으로서 등록 전에 고엽제후유증으로 인하여 사망하였음이 인정되는 자의 유족에 대하여는, 법 시행 전후나 등록신청 여부를 불문하고, 보상을 행하도록 하였다.